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구로 노보루 (문단 편집) == 개요 == 이시구로 노보루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애니메이터]]이다. 대표작은 [[우주전함 야마토]][* 스탭롤에는 감독이 [[마츠모토 레이지]]로 되어있으나 당시 유명한 만화가였던 마츠모토의 네임밸류를 빌리자는 전략이었고 현장 감독은 이시구로 노보루였다. 이는 당시의 애니메이션 잡지에서도 공공연히 다뤄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야마토 팬들은 이시구로 노보루를 야마토의 감독으로 여긴다.], [[철완 아톰|철완 아톰(1980)]],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은하영웅전설/애니메이션|은하영웅전설]] 등이 있다. 우주전함 애니메이션의 전설적인 감독. 그런데 정작 이시구로 본인은 [[명랑만화]]를 선호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데즈카 오사무]]의 [[新宝島|신 보물섬]]에 매료되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 식 단순한 그림체에 익숙해졌는데 그가 만화가로 데뷔하려고 했을 때부터 [[극화]]체 만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다른 만화가 친구의 생활을 보면서 만화가는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은 항상 가난한 직종이라고 잘못 알려져있는데 이 시기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기술자가 별로 많지 않아서 만화가보다 애니메이터가 돈을 더 벌었다.] 대학 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캬바레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로 일을 하고 방황했다고 한다. 그런데 또 여기서도 재능이 있어서 음악도 굉장히 잘 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감독 중 악보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철완 아톰]] 애니메이션이 잘 나가는 것을 보고 애니메이션은 만화체로 그려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진로를 애니메이션으로 바꾼다. 애니메이션 대학 졸업 논문은 '애니메이션의 미래' 라는 제목으로 철완 아톰을 연구한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애니메이터가 되어보자는 생각으로 하청사에서 일하면서 [[데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의 원화를 그리기도 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이시구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여러 번 [[무시 프로덕션]]에 들어오라고 러브 콜을 보냈으나 이시구로는 큰 기업에서 일하는 건 체질이 아니라 들어가지 않고 프리랜서로 남았다고 한다. 대신 무시 프로덕션 사람들과의 관계는 친밀해서 [[도로로]]나 [[내일의 죠/애니메이션#s-1|내일의 죠]]에 참여했다. 데즈카 오사무도 그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해서 80년대에는 자신의 작품을 이시구로 노보루에게 맡겼다. 그리고 완사 군에서 무시 프로덕션 관계자였던 [[니시자키 요시노부]]와 일을 하는데 음악 경력을 살려서 콘티에 악보를 적어놨는데 음악 프로듀서가 전직이었던 니시자키는 동질감을 느끼고 이시구로 노보루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그를 [[우주전함 야마토]]의 감독으로 기용하였다. 야마토에서 그의 재능은 완전히 개화하는데 감독이면서도 작화를 담당하기도 했다. 야마토 팬들의 이시구로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아서 그가 담당한 새로운 여행까지만 야마토로 인정하고 [[야마토여 영원히]] 부터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1978년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아트랜드]]를 창업한다. 아트랜드를 경영하며 인재 발굴을 했는데 이때 직원으로 기용한 인물들이 [[이타노 이치로]], [[미키모토 하루히코]], [[히라노 토시키]]이다. 그리고 이 회사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로 흥행에 성공한다. 이시구로는 신인만 가능한 패기를 높게 평가하고 신인을 기용하는 걸 좋아했는데 마크로스 제작 당시 디자이너였던 [[카와모리 쇼지]], 아르바이트였던 [[타카야마 후미히코]], 면접 때 "아무것도 못 합니다!" 라고 대답한 [[야마가 히로유키]]의 재능을 알아보고 연출가로 데뷔시키기도 했다. 그 외의 연출 제자로는 [[이타노 이치로]], [[니시모리 아키라]]가 있다. 말년에는 [[이마이즈미 켄이치]], [[타나카 마사요시]], [[쿠도 마사시]]를 발굴하고 지원했다. 보통 신인이 작화감독이나 연출과 같은 전문 직종으로 전환하려면 천재라도 3 ~ 5년은 걸리는데 이시구로는 가능성만 보이면 기초만 가르치고 바로 실전에 투입했다. 이렇게 신인에게 연출과 작화감독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 그가 감독한 작품이나 [[아트랜드]] 작품은 에피소드마다 연출과 작화의 편차가 심하다. 살짝 기인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성격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트랜드는 직원의 실수로[* 첫번째는 [[혼타니 토시아키]]가 질렀는데 크게 혼 안 났다고 한다.] 두 번의 화재를 겪기도 했는데 크게 화내지 않고 용서해줬다고 한다.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워프를 할 때 [[모리 유키]]의 속옷이 보이는 이상한 연출이 있는데 이시구로 노보루가 그려넣은 것이라고 한다. 주변인의 증언으로는 살짝 기인이었다는 소리가 많다 이후 강사와 아트랜드 대표로서 후배들을 양성하다가 2012년 세상을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